예배의 이유를 물으면 다소 격정적인 대답이 들린다.
" 예배하지 않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 인간의 숙명으로서 당연히 신을 예배해야 한다."
" 인간이 예배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념이 불온전하거나
흐릿한 것이 아니라면
그 온전한 것과 선명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될 일이다.
스승의 날에
꽃다발을 주는 이유를 묻는다면
" 초등학교 5학년 때 그 선생님이 나의 교재를 사주고, 꿈을 함께 찾아주고,
성인이 될 때까지 연락하면서 이끌어주셨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스스로의 길을 계속 찾지 못했을 거다."
'당연히'라는 이야기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인간이면 당연히 두번째 계단에서 신발끈을 묶어야한다. 그 분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 분은 절대자시고 우리는 그 분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피조물인 우리는 당연히 그를 따라야한다.
그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주셨다."
인간이면 당연히 예배해야한다는 이야기는
크리스찬이 아닌 사람에게는 위와 같은 이야기와 똑같이 들린다.
내가 예배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나는 계속 속세의 이익만을 좇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는 중에
나는 나의 재능을 살려주는 사람을 만나고
기업을 만나고, 멘토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위기를 넘겨왔다.
이게 운으로 되나 싶을 정도로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문제들은 해결됐다.
신의 도움과 나의 따르지 않음은
기차의 마디처럼 반복되고 있다.
그것이 내가 신의 인내를 인정하고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보다 위에 계신 분으로 인정하여
예배하게 되는 이유다.
나의 악과 신의 인내
이 두가지가 나에게 있어서는
예배의 이유다.